* 차랑님과 연성교환으로 쓴 단히소입니다.
--
클로로에게 동요란 할 필요조자 없는 쓸데없는 감정이었다. 동요를 하며 선택을 미루는 것은 그에겐 미련한 일이었다. 전략상 후퇴는 쉽게 결정할 수 있어도 결정적인 순간에 내려야 할 찰나의 확신이 들지 않은 적은 없었다. 회피와 방어는 능숙하게 사용하면 매우 유용한 삶의 방식이었고, 클로로는 여단의 존속을 위해서라면 어떤 상황이 닥쳐도 거리낌 없이 선택할 자신이 있었다. 그에게는 자신의 선택을 뒷받침해 줄 수 있는 능력과 경험이 있었다. 그런 삶의 태도는 클로로의 몸에 완벽히 배어있었다.
그런 그가 머뭇거리게 되는 일이 일어났다. 클로로는 그답지 않은 곤란한 표정으로 자신의 앞에 있는 권총을 바라보았다. 사방은 정체를 알 수 없는 벽으로 막혀있었으며, 문이 없는 방에는 권총말고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는 손을 들어 넨을 사용하려고 했지만 비어있는 손에는 아무것도 생겨나지 않았다. 묵직한 책의 느낌이 느껴지지 않는 미묘한 허무감. 클로로는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있었다. 익숙한 느낌이었기 때문이었다.
“제넨을 당했군.”
그는 중얼거렸다.
대답이 돌아올 거라 생각했지만 그의 예상과는 다르게 찾아오는 것은 정적이었다. 검고 맑은 그의 눈동자가 앞을 향하자 불만에 가득 찬 히소카의 표정이 보였다. 히소카 또한 자신과 같은 상황이라는 것은 말을 나누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어떤 상황인지 파악하기도 힘든 이 상황에서 둘은 놀라울 정도로 차분했다. 둘의 완력으로도 부술 수 없는 공간은 누군가의 넨으로 만들어진 완전히 인위적인 공간이라는 것을 시사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재미없어’
싸늘한 눈초리로 권총을 바닥에 내팽겨치는 히소카의 온몸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당사자를 발견하면 그냥 죽이는 걸로는 성이 차지 않을 것 같아♠”
한참 뒤에야 입을 뗀 히소카에게 클로로는 ‘네가 나갈 수 있다면 말이지.’ 라고 대답했다.
‘네가’. 클로로의 입 밖에 나온 단어에, 너무나 쉽게 나온 단어에 히소카는 피식 웃었다. 그는 클로로의 말의 의미를 알고 있었기에. 그의 악질적인 농담을 받으면서도 고개를 저으며 곤란하다는 듯 손을 흔들었다.
“‘평범함’이라는 것만큼 재미없는 것도 없잖아?♠ 저 쓸데없는 명령을 듣는 것 보다는 주먹싸움을 하다가 동시에 죽는 게 훨씬 재미있을 것 같은 걸♣”
“최근에 야쿠자 영화라도 본거야?”
“응♦ 재미는 없었지만♠”
“너는 영향을 잘 받으니까.”
대화의 주제는 벽에 쓰여진 한 문구에 대한 것이었다.
[러시안룰렛을 하시오.]
투박한 글씨체로 쓰인 문구는 이 방이 만들어진 목적이자 이 방에서 나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에 대한 설명이었다. 클로로는 덤덤한 표정으로 히소카가 집어던졌던 권총을 집어 들었다. 리볼버. 8구경. 총알은 4발이 들어있었다. 예상대로 총알은 총에 붙은 듯 떨어지지 않았다.
“.... 방법은 없으니 시작하지.”
클로로는 아무런 미련 없는 표정으로 총구를 자신의 관자놀이에 가져다 댔다. 방아쇠를 당기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찰칵, 하는 소리와 함께 히소카의 눈꺼풀이 가볍게 깜박였다. 클로로는 느릿하게 팔을 움직여 자신이 들었던 리볼버를 두 눈으로 확인하고는, 자신이 아직 살아있다는 것을 확인하듯 양손으로 총을 매만졌다가 히소카에게 던졌다. 작은 권총은 빨려들어가듯 히소카의 손 안으로 들어갔다.
“네 차례야.”
“.......정말 당신은 거미의 존속을 위해서라면 뭐든하네♠”
“그렇지. 거미의 존속을 위해서라면 나 하나 죽는 건 일도 아니니까.”
“.......”
아 그래. 히소카는 조금은 불만인 표정으로 리볼버를 매만졌다. 자신의 힘이 통하지 않는, 온전히 무력해진 것 같은 기분. 아군이 하나도 없다는 것은 히소카에겐 익숙한 일이었지만, 이 상황에서는 그것이 너무나 어색했다. 눈앞에 있는 ‘그’조차 자신을 바라봐주지 않는 것이. 히소카에게는 불만이었다.
“-♦”
히소카는 작게 흥얼거렸다. 싸구려 술집에서 들렸던 누군가의 노래였다. 술에 취해. 자신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상태로 부르는 사랑노래.
‘지금까지 우리가 나누었던 수많은 밤은 다 어디 갔는지.’
흥얼거린 구절의 노래가사는 그의 생각보다 오래 마음속에 남아있었다.
히소카는 아쉽다는 듯 입을 다셨다. 토라졌다는 듯 입술을 비죽이며 실린더를 손가락으로 느리게 돌렸다. 다닥, 다닥. 차갑고 무기질적인 철제 소리가 조용한 방을 울렸다. 규칙적이지도 않은 작은 소리가 클로로의 신경에 거슬리기를 조금은 기대하며. 히소카는 오랫동안 총을 만지작거렸다.
“.......히소카.”
그가 이름을 불렀다. 히소카는 입 꼬리를 묘하게 올리며 장난치던 손가락을 멈추었다. 잔소리가 들리는 눈빛에,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총을 자신의 머리에 가져다 댔다.
“있잖아, 그거 알아?♣”
자신을 바라보는 검은 시선을 똑바로 바라보며 히소카는 비밀 이야기를 하듯 조용히 속삭였다.
지금 이거, 당첨이야♥
히소카는 피날레를 장식하는 마술사의 표정으로 눈을 휘어 웃었다.
'2 > 헌터x헌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레오크라/논커플링] ことば -말 01 (0) | 2018.05.01 |
---|---|
[비스칸] 궁금증 (0) | 2018.04.28 |
[단히소/15금] 사랑의 매 (0) | 2018.04.22 |
[레오하렐] 인형뽑기 (0) | 2018.04.18 |
[패리진/진패리 LET'S PLAY] (0) | 2018.04.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