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잔인합니다. 주의. 카니발리즘소재 있음.
* 보컬로이드 '광기' 소재 따왔습니다.
그곳은 매우 깨끗한 곳이었다. 얼룩하나 묻어있지 않은 새하얀 벽과 바닥과 천장은 너무나도 깨끗했기에 눈을 아프게 했다. 잠에서 깬지 얼마 되지 않아 멍한 머리가 제대로 된 사고를 할 수 있게 될 때까지 마리크는 벽에 기대 눈을 깜박였다. 어느새 갈아입혀진 흰 단벌옷은 마치 환자복을 연상시켰다. 창문 하나, 가구 하나 놓여 있지 않은 방은 혼자 있어서인지 넓게만 느껴졌다. 자신이 왜 여기에 왔는지는 알 수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도저히 알 수 없는 것은 모른다는 사실에 적응해버리거나 정답을 찾기를 포기하게 된다고 하던가. 마리크는 저항하느라 몸 이곳저곳에 난 생채기를 만지작거렸다.
*
자신의 앞에는 철로 된 문이 있었다. 시간이 되면 멀리서부터 발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더니, 문 아래에 있는 작은 입구로 물과 먹을 것을 넣어준다. 그것 이외에는 다른 사람을 접할 기회도, 수단도 없었다. 방음도 철저하게 잘 되어있어서 옆방에서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전혀 알 수 없었고, 이곳에 자신 이외에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도 확실하게 알 수 없었다. 이곳에 처음 끌려왔을 때에는, 세상이 떠나가라 고함을 지르고 욕을 뱉어냈던 걸로 기억한다. 부서져라 철문을 두들기고, 들어오는 음식을 내치기도 했다. 하지만 아무런 소득도 얻지 못했다. 마리크는 여기서 아무리 발버둥을 친다 한들, 자신에게 돌아오는 이득은 아무것도 없다고 판단하였다. 쉽게 말해 지친 것이다.
시간이 남아도는 공간 안에 있다 보니 뒤질 곳도 없는 방을 살펴봤지만 구석, 벽의 어중간한 높이에 작은 구멍이 있는 것 말고는 특이점이 없었다. 눈을 대고 들여다보았지만 자신의 방과 똑같아 보이는 흰색에 맥이 빠졌었던 걸로 기억한다.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는 것으로 보아 아무도 없는 방일 것이다. 마리크는 점점 마음을 내려놓기 시작했다 피곤했고, 추웠다. 쾌적한 온도와 습도가 유지되고 있는 이상하리만치 적막한 이 공간에 잡아먹히는 상상을 하며, 구석에 웅크려 눈을 감았다.
생소한 느낌. 잠에서 깨어 눈을 뜨자 보이는 흰 실이 너무나도 신기해보였다. 한동안 밖의 사물을 접하지 않아서인가, 실을 건드리다 몸을 일으키자 몸 위에 얹혀져 있던 종이컵이 아래로 툭 떨어졌다. 실은 종이컵과 연결되어있었다. 마치 다 먹고 씨만 남은 사과처럼 꼬깃꼬깃 구겨져있는 종이컵을 펴자 어디선가 많이 본 것 같은 형태가 되어있었다. 가만히 그것을 보던 마리크는-머뭇거리면서도-조심스럽게 그것을 귀에 가져다대었다. 빠르게 실이 당겨지는 느낌에 어깨가 흠칫하고 놀랐다. 아스팔트를 긁는 것 같은 목소리가 들렸다.
“이름은?”
“......마리크. 네놈은?”
그 목소리는 젊었지만, 엉망진창으로 손상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실전화기의 건너편에 있는 사람은 마리크의 대답을 듣더니 미친 것 마냥 소리 내서 웃기 시작했다. 그 웃음소리는 너무나도 괴이했고 저렇게 웃다가 실신해도 이상하지 않을 것만 같았다. 슬슬 기분이 나빠지려 할 때 즈음, 뚝 멈춘 웃음소리는 자조 섞인 한숨과 함께 실전화기를 끌어당겼다. 마리크가 그것을 귀에 가져다 대자 망가진 목소리는 낮게 그르렁댔다.
“나도 ‘마리크’다.”
아. 그랬구나. 마리크는 헛웃음을 지으며 납득했다. 이런 상황에서 만난 옆 사람의 이름이 자신의 이름과 같으니, 웃겨서 정신이 나갈 지경이라 해도 무리가 아니다. 이미 미쳐있어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니까. 마리크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왠지 모르게 이 상황이 슬펐다.
*
옆방의 ‘마리크’는 그 날 이후로 매일 마리크와 실전화를 이용해 말을 주고받았다. 딱히 특별한 이야기를 하는 것은 아니었다. ‘마리크’는 항상 자신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을 꺼려하였고, 어투도 사람으로서 그리 자연스럽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리크는 ‘누군가’와 대화를 하는 것이 워낙 오랜만이었기 때문에 외로움이 사라지는 실전화기의 시간이 내심 마음에 들었다.
“아, 배고프다.”
점심을 먹고 있는 중에, 미약하게 들리는 건너편의 중얼거림에 마리크는 실전화기를 들었다. ‘마리크’가 실의 움직임에 반응하여 전화를 받는 것이 느껴졌다.
“안 먹었냐? 아까 넣어줬잖아.”
“아....... 넌 밥 주냐? 난 아직.”
“뭔 말이야.”
“너 자면 먹을 걸?”
“뭐먹는데?”
“생고기.”
“......여긴 그런 것도 주냐? 넌 그걸 또 먹다니, 미친 거 아니냐.”
“쿡쿡... 익숙해지면야.”
‘마리크’는 짓궂은 농담과도 같은 말을 지껄이더니 혼자 끌끌거리며 웃었다. 마리크는 웃을 때마다 들리는, ‘마리크’의 목에서 나는 쇳소리와도 같은 부자연스러운 소리가 거슬렸다. 마리크는 ‘마리크’가 걱정되었다.
“너 괜찮냐?”
“엉?”
“몸 안 좋은거 아니냐고 바보야.”
“허, 나를 신경 쓰지 말고 너나 죽지 마 병신아.”
“뭐?”
“다음은 네 차례더라.”
“......그게 무슨 말이야.”
“.......”
‘너를 지키지 못하니까 화가 난다.’ 실전화기는 한동안 아무 말이 없다가 나지막한 목소리를 남기고 끊어졌다. 실이 완전히 끊겨버려 맥없이 구멍을 비웠다.마리크는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는 기분이 들었다. 실전화기에 대고 무언가 말을 했지만 실이 끊어진 전화기는 더 이상 제기능을 할 수 없었다. 구멍은 어느새 다른 무언가로 막혀있었다. 마리크는 ‘마리크’에게 말했다. 벽에다 대고 외쳤다. 기다리겠다고, 자신은 절대 죽지 않을 테니 기다리겠다고 말했다. 그러니 자신의 곁에 있어달라고 했다.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자신도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마리크는 혼자가 무서워졌다는 것이다.
마리크는 사람을 원했다. ‘사람’이라는 존재에서 너무나 오랫동안 격리되어 살아왔기 때문에, 비록 종이컵과 실 한 가닥이지만 자신의 기억에 새겨지는 다른 사람의 존재는 생각보다 훨씬 강력하게 마리크의 안에 새겨졌다. 그는 ‘마리크’에 어느 샌가 자신이 의존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마리크’를 갈구했고, ‘마리크’가 그런 자신을 받아들여주는 것을 은연중에 알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놓지 못했다. 그 모든 것이 사라진 순간, 마리크는 이 공간에 온 이후 처음으로 눈물을 흘리다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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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과 철이 부딪히는 소리. 귀를 거슬리는 날카로운 기계음과 코를 찌르는 피비린내가 ‘마리크’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하지만 이내 적응하여 어깨를 으쓱하고 자신의 앞에 널부러져있는, 형태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훼손된, 내장. 그 이외에 인간의 신체기관 중 일부가 섞인 것로 추정되는 고기 덩어리를 내려다보았다. 마리크는 맨손으로 손가락을 잡아들어, 마치 닭발을 뜯듯 그것을 뜯어먹었다. 이젠 검어져 꿀쩍하게 새어나오는 피가 양념인 것 마냥 ‘마리크’의 턱을 타고 흘러내렸다.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이미 미치고도 남은 이 장소에서 ‘마리크’는 놀랄 정도로 오래 살아남아왔다. 이곳에 잡혀 들어온 지 연 몇 년, ‘마리크’는 철저하게 식인수인으로 훈련되고 있었다. 주위에는 자신보다 더 괴이하게 바뀐 인간들도 있었다. 하반신이 동물로 바뀌는 수술을 집도한 인간이나, 한 몸에 두 머리를 붙인 인간이라던가. 왜 인간들이 이런 일을 하는 건지, 어째서 이런 일을 하는 사람들이 있는 건지는 전혀 이해할 수 없지만, 더욱 이해가 안 가는 것은 이곳의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개발자’라 칭한다는 것이다. 자신이 보기엔 그저 정신 나간 사람들이지만, 실제로 사람들을 잡아와 가두고, 실험한 후, 이 모든 ‘개발’을 집도하는 것은 이 기관의 사람들이었다.
처음부터 인간을 먹을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죽기 직전까지 먹을 것을 주지 않다가 배고픔이 극에 달했을 때 본 인육은 본능이 이성과 논리를 눌러 인육으로 보이지 않았다. ‘마리크’는 본능에 따랐고, 그 실험이 반복되면서 이제는 웬만한 시체를 봐도 놀라지 않게 되었다. 사실 그때는 먹을 수 있었다면 바퀴벌레라도 잡아먹었을 것이라 ‘마리크’는 추억했다. 이후로 ‘마리크’는 살아남기 위해 인육을 먹었다. 그들은 자신에게 인육 말고는 제공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실험과 ‘개발’에 실패한 시체를 처리하는 역할. 먹고 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
어디가 잘못된 건지 모르겠지만 어느 날 일어나보니 목소리가 완전히 망가져있었다. 말할 때마다 목이 찢어지게 아파 짐승 같은 괴상한 소리밖에 낼 수 없게 되었고, 발음도 어려워졌다. ‘마리크’는 덜컥 무서워졌다. 이대로 자신이 인간이 아니게 되는 건가 하는 생각에 패닉에 빠졌다. 그러다 새로운 방이 배정되어‘개발자’들을 보는 빈도가 줄어들게 되었다. ‘마리크’는 그들의 얼굴을 보지 않는 것만으로도 만족하였다.
그곳은 깨끗한 곳이었다. 자신의 거동을 관찰하기 위함인지 카메라가 설치되어있었다. 그리고 벽에는 작은 구멍이 있었다. ‘마리크’는 옆방에서 느껴지는 인기척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아직 죽지 않은 사람(‘마리크’는 ‘개발자’를 ‘인간’의 존재로 인식하지 않았다.)과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이다. 그리고 그 사람은, 자신과 같은 이름을 가진 그 녀석은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고, 자신의 분수도 모르고 ‘마리크’를 걱정했고, 그가 아직 인간임을 일깨워준 유일한 사람이었다. ‘마리크’는 어느 순간부터 마리크가 실전화기를 들기만을 고대했다. 몇 년 동안 인간의 말을 입에 담지 않았기 때문에 ‘마리크’에게는 이 순간이 사막의 오아시스였다. 그는 자기 귀에 들리는 마리크의 음성에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집착하게 되었다.
‘개발자’와의 접촉은 줄었지만 끊긴 것은 아니었다. 그들의 곁에서 식사를 하며 ‘마리크’는 생각보다 많은 정보를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마리크에게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말해주고 싶지 않았다. 그는 마리크가 자신을 의지하고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지금의 자신이 마리크에게 필요한 존재라는 것은,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기쁜 일이었다. 그래서 ‘마리크’는 자신이 ‘개발자’와 알고 지낸다는 것을 최대한 숨겼다. 당연히 ‘마리크’는 마리크의 코드번호를 알고 있었다. ‘마리크’는 마리크가 최대한 오래 살길 원했기 때문에 ‘개발자’들의 입에서 그 번호가 영영 나오지 않기를 바랐다.
*
‘마리크’는 마리크를 보았다.
‘마리크’는 서 있었지만 마리크는 쓰러져있었다.
‘마리크’는 살아있었지만 마리크는 더 이상 숨을 쉬고 있지 않았다.
마리크가 이렇게 생겼구나. ‘마리크’가 처음 한 생각이다. 자신에게 시체가 넘어왔다는 것은, 끝을 의미한다. 마리크는 이곳에 있을 필요가 없어졌다. 더 이상 외로워하지 않아도 되고 배고파하지 않아도 된다.
“.......”
‘마리크’는 마리크의 손을 깍지껴 잡고 다른 손으로 마리크의 몸을 더듬었다. 복부-봉합을 제대로 하지 않은 수술입구-에서 계속되고 있는 출혈을 손으로 틀어막아 상처부분을 지혈했다. 혹여나 몸에 얼룩이지지 않을까, 피 묻은 손을 닦고 마리크의 얼굴을 매만졌다. 귀에 입술을 가져다 대고 마리크의 이름을 불렀지만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심장이 아픈 것 같은 이상한 느낌에 속이 울렁거렸지만,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충동에 이끌려, 마리크의 입술을 한번 빨아보았다.온기가 빠져있는 푸석푸석한 껍질을 맛보았음에도 더욱 하고 싶다는 모순적인 생각이 웃겨 ‘마리크’는 씁쓸하게 미소 지었다.
“너의 몸이 폐기장으로 버려지지 않게 해줄게 마리크.”
‘마리크’는 마리크의 몸을 꽉 끌어안았다. 자신의 감정이 무엇인지 정의할 수 없었다. 하지만 자신이 안고 있는 이 몸이 다른 시체들과 함께 시체들의 산에 파묻히는 것만큼은 용납할 수 없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이대로 있다가, 다리부터 먹자.
‘마리크’는 사라져가는 마리크의 온기를 조금이라도 더 느끼고 싶어 그의 목에 코를 묻고 눈을 감았다.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