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모템] 05 - Broken doll

Posted by 1/횡성한우 : 2018. 8. 7. 01:10

** 7/28-8/28 모모x세프템 계연로그



 그것은- 매우 오래되었던 기억의 조각.

 

 “에밀리- 나는.”

 “네 도련님.”

 

 너무나도 행복하고, 어딘가 쌉싸름한 어릴 적의 기억.

 

 “나는 나중에 어른이 되면- 에밀리랑 결혼할래.”

 “어머나. 그것 참 기쁘네요.”

 “. 그러니까- 그러니까,”

 

 지금은 상대의 이름조차 생각나지 않는, 아직 내가 인간이었을 때의 기억.

 

 “여기서 더 늙으면 안 돼. 알았지?”

 “도련님이 어른이 될 때 저는 80이 넘어있을 텐데요?”

 

 쪼글쪼글한 눈으로 대답하는 그 할머니는- 나의 그 말에 웃어주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어른이 되기 전에는 먼저 옷매무새부터 정리하셔야 합니다, 도련님.’ 에밀리는 그렇게 말했었다. 나는 그런 에밀리도 좋았다. 그래서 웃었다. 하지만 나는 그 날 밤, 나는 보았다. 나에게 보여주지 않은 자상한 미소를, 그녀는 나의 아빠와 엄마 곁에서 짓고 있었다. 무언가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았다. 오늘 즐거운 일이 있었던 걸까, 나는 알 수 없었다. 어른들의 이야기겠거니 하고, 귀를 기울이지는 않았지만, 나에게 지어주지 않는 미소를 짓는 에밀리가 너무나도 야속했다.


 나는 그날 밤 펑펑 울었다. 에밀리가 아무리 내 곁에서 달래주어도, 나는 울음을 멈추지 않았다. 왜 내 앞에서는 웃지 않는 거야 에밀리. 에밀리는 엄마랑 아빠보다 나랑 더 함께 있잖아. 에밀리는 나를 더 좋아하잖아. 마음에 쌓인 말은 많았지만, 나는 에밀리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베개와 이불을 집어던지며 엉엉 소리쳤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건, 내가 태어나서 처음 한 질투였다.


 부모와도 같았던 에밀리에게서 오로지 애정을 받지 못한 어린아이가, 자신의 애정에 그대로 되돌아오지 않는 보답이 서운해서 느낀 배신감이었다.


 승마연습을 하다 넘어져 다리가 부러졌을 때도 빠르게 울음을 그쳤던 나는 그날 밤을 새서 울었다.


 그 정도로 서러워서.......


 

⬙⬙⬔⬘⬘⬓⬗⬖⬕⬘⬒


 

지금의 나는 느끼지 않는 감정이다.

 

 나는 모든 인간을 무조건적으로 사랑하니까. 그렇게 배웠으니까. 그렇게 행동하는 것만이 나를 이곳에 존재하게 하니까.

나는 그렇게 행동하지 않으면-

 

 .......

 

 “나한테는 당신밖에 없어요. 사랑해. 사랑해... 정말로.”


 비어있는 등을 감싸듯 다가온 다부진 가슴과 몸을 감싸는 단단한 팔은, 평소에 알던 향취가 아닌 다른 사람의 향수냄새가 그대로 배어있었다. 말하는 단어마다 숨결마다 진심과도 같은 진동이 담겨있었다. 그는 나에게 울 것만 같은 목소리로 호소했다. 너무나도 기분이 좋아야 할, 사랑하는 인간의 고백.

 

 나는 웃으며 나도 그렇다고 말해야 한다. 그 말밖에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없었다. 그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얼굴근육이 움직이지 않았다.

 언제나 기분이 좋아야 할 그의 품이, 기분이 좋지 않았다.

 향수냄새 때문이야. 코를 막고 싶었다.


 나는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무어라 말하기 위해 입술을 달싹였다가, 무표정으로 입을 다물었다. - 이상해. 이상하게도, 눈앞의 그가 둘로 보였다가 하나로 보였다 흐렸다 했다. 정말로 이상하네. 생각하는 찰나, 나는 이유를 알수 없게도, 말하고는 못 배길 것 같아, 정말로 묻고 싶었던 질문을 꺼냈다. 너무나도 궁금해서, 순수한 호기심이 어쩔 수 없이 혼자 시간을 때웠던 오늘의, 골동품점에서의 심심하기 그지없었던 시간을 퍼내며 나와 버렸다.


 “... , 여자한테도.”

 “...?”

 “그 여자한테도, 그 말... 했어? 방금 나에게, , .., 사랑, 한다는...”

 

 했겠지. 그는 일을 철저하게 하니까. 그에게 번견이란 어떤 존재인지, 이미 나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에게 번견이란 그가 있을 장소이자, 그의 아버지와도 같은 인간이 그에게 만들어준 울타리와도 같은 곳이었다. 그는 자기 자신보다 이곳을 더욱 소중하게 여기고 있었다. 그와 번견사이에 자신이 들어갈 장소는 없었다. 내가 끼어들 입장도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었고, 실제로도 그렇다. 그에게 번견이란 나에게 에밀리와도 같은 곳이다. 절대로 잃기 싫고, 소중한, 그만의 보물 상자. 아무도 건드릴 수 없는 것이다. 답을 듣기도 전에 내 머리는 너무나 이성적으로 답을 냈다. 그와 동시에, 내 오른쪽 눈이 먼지가 들어간 것처럼- 무거워지더니, 커다란 물방울이 맺혔다가,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


 나도 알 수 없을 정도로 부서져서 가루가 되었던 감정이 눈을 통해 나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나는 당황했다. 그리고 놀랐다. 지금껏 나 자신의 감정 때문에 울었던 적은 없었는데. 나는 이런 인간이 아닐 텐데, 나는 이런 배우지 않았는데. 왜 이러지. 왜 이러지. 눈물 때문에 잔뜩 흐려진 눈동자를 굴리며 생각하다 순간 스쳐지나간 데자뷰에 나는 눈치 챘다. 먼지가 가득 쌓인 감정의 조각 하나가 새삼스레 일어나 울고 있었다. 그 감정이 왜 이제야 다시 나오는 거지. 나는 알 수 없었다. 의아해 눈을 깜박이자 진주와도 같은 굵은 눈물이 떨어져 바닥에 둥근 자국을 남겼다.


 “...?”


 나는 더 이상 무언가를 말할 수 없었다. 이런 상태가 될 줄은 몰랐기에, 그저 내 표정이 어떤지 확인하기 위해 오른손을 들어 나의 얼굴을 더듬었다. 끊임없이 오른쪽 눈을 통해 주륵주륵 흘러나오는 얇은 눈물길을 제외하면, 딱딱하게 굳은 평소의 얼굴 그대로였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미소를 지을 수 없었다.


 눈앞의 모모가 당황하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그를 진정시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내 상태보다는- 그를. 그는, 그는 피곤할 테니까. 나는 그를 사랑하고 있으니까. 그를 보살피고, 안전하게, 행복하게, 아프지 않게. 그렇게- 그는 나에게 그런 걸 원하고 있으니까. 나는 그에게 위로가, 되어주어야 하니까. 내가, 흔들리면.......


 멋대로 떨리는 입술을 억지로 열어속삭이듯 말했다. 눈물에 젖어 평소보다 가느다란 목소리가 점멸하는 등처럼 흔들렸다.


 “보지 마. 말하지 마. ...기다려줘. 나는, 괜찮아.”

 “괜찮아.”

 

 나는 오른손으로 오른 눈에서만 나오는 이질적인 눈물을 닦아냈다. 그의 얼굴을 볼 수 없었다. 다행이게도, 나의 왼눈은 너무나 평이하게 메말라있었지만, 어디가 잘못 되서 오른 눈이 고장난건지. 제대로 굴러가지 않는 기계를 앞에 둔 사람과도 같은 기분이었다. 뭐가 잘못된 걸까. 이렇게 열심히 닦는데, 왜 눈물이 멈추지 않는 거지.


 나는 알 수 없었고,


 그렇기에, 괜찮다는 말 밖에 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