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패리치들
* 네테로가 사라진 후의 협회 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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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리스톤의 장난은 날이 갈수록 심해져만 갔다. 치들은 그의 장난과도 같은 괴롭힘을 받으면서도, 그것을 처리해가며 자신의 자리를 당당히 지켰다. 그의 가스라이팅에 정신을 완전히 빼앗겨 최면만 안 당했을 뿐이지 완전히 그의 의도대로 움직이는 협회를 자신이 원하는 ‘올바르고 합리적인’ 모습으로 바꿔나가는 것은 뼈가 갈리는 것 같은 노동을 필요로 했다.
그녀는 끊이지 않는 서류와, 전화통화와, 회의에 완벽하게 대처하며 하루도 빠짐없이 협회 건물에 상주했다. 그녀의 업무량은 장난이 아니었다. 그러면서도 그녀는 매일 깔끔하고 단정한 옷차림으로, 피곤함따위는 없는 것 같은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런 그녀의 의연한 모습은, 패리스톤의 장난에 자신이 타격을 받고 있지 않는 다는 것을 공공연히 보여주기 위함이었지만, 패리스톤은 오히려 쓰러지지 않는 그녀의 모습에 더욱 재미있어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치들씨, 며칠 동안 집으로 돌아가지 않은 듯하네요. 몸, 괜찮으신가요?”
“마음에도 없는 걱정은 하지 마 -> 쥐”
지나가듯 떠보는 패리스톤의 비아냥에 치들은 미간을 팍 구기며 대꾸했다. 패리스톤은 시선을 느릿하게 내려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뱀이 쓸고 지나가는 것 같은 눈빛이었다. 치들은 불쾌하다는 듯 고개를 돌렸다. 패리스톤의 입 꼬리가 부드럽게 올라갔다.
“아무리 안경으로 감추려곤 해도, 다 보인다구요? 다크서클.”
“그러니까, 네가 신경 쓸 건 아니라고 -> 쥐”
“벌써 며칠이고 밤을 새셨죠? 많이 예민해진 거 아닙니까? 캐릭성 다 없어졌다구요?”
치들은 주먹을 꽉 쥐었다. 이것도 저것도, 다 패리스톤이 4살 꼬마가 뒤엎어 놓은 것처럼 장난문구를 서류 사이사이에 끼워 넣었기 때문이었다. 끝없이 이어지는 제도의 약관사항들, 작은 글씨체에, 어려운 법률 용어들 속에 자신이 유리한 문구를 교묘하게 숨겨놓아 일일이 찾아내는 것만으로도 고역이었다. 성실하고 꼼꼼한 치들은 자신이 자신을 점점 몰아세우는 걸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멈출 수 없었다. 자신을 이렇게 몰아세우는 건 패리스톤이었고, 그의 장단에 맞추지 않아버리면 정말로 자신은, 협회는, 패리스톤이 ‘재밌다’고 말할 정도가 되지 않으니까.
패리스톤의 ‘재밌다’라는 기준은 너무나 주관적이었고, 그가 헤엄치기 좋은 풀장이었지만, 말 그대로 ‘좋은’협회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그가 하는 일은 어느 정도 타당한 일이었다. 그의 장난이 없으면, 협회의 사람들은 나태해지고, ‘협회의 신뢰성’이라는 변명 속에 숨게 될 테니까.
그럼에도 이렇게나 몰아세워질 줄은 몰랐다. 네테로 전 회장의 업무량이 얼마나 많았을지,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실감하는 건 처음이었다. 이런 ‘장난’에도 전 회장은 웃으며 협회를 그렇게 훌륭하게 지탱해 오셨던 것이었다. 그 능력의 차이를, 그의 빈자리를, 자신만큼이나 패리스톤도 느끼고 있다는 것을, 치들은 최근 깨달은 참이었다. 자신은 네테로를 대체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패리스톤의 장난은, 그 사실을 자신에게 피력하는 것만 같았다. 무력감에, 약한 자신에게 화가 나 치들은 구겨진 신문지처럼 표정을 구겼다.
“피곤하면 들어가서 쉬시는 게 좋아요? 치들씨는 아무리 헌터라고 해도 체력적으로 뛰어나신 분은 아니니까.”
패리스톤은 과하게 반짝거리는 표정으로 걱정스레 말하며 손으로 그녀의 이마를 짚었다. 치들은 깜짝 놀라, 어깨를 파들 떨었다. 거부하기도 전에 커다란 손바닥이 자신의 이마 위를 안정적으로 덮었다가, 가만히 쓸어 올렸다. 따뜻한 표정인것에 비해 손은 너무나도 차가워 정신이 번쩍 들었다.
피곤에 넝마가 된 정신에, 그렇게나 꼴 보기 싫은 상대에게서 받은 동정은 너무나도 기분을 상하게 했다.
“......그게 무슨 말이야. -> 쥐”
팍, 치들의 손이 패리스톤의 손을 쳐냈다. 순진한 표정으로 손을 떨어뜨린 패리스톤의, 아무것도 모른다는 탁한 눈을 이글거리는 눈으로 노려보던 치들의 눈망울에 커다란 눈물방울이 맺히기 시작했다.
“... 치들씨?”
아프다며 호들갑을 떨고는, 또 다른 비아냥을 하며 골려주겠다고 머리를 굴리던 패리스톤의 야실한 미소에 작은 놀라움이 퍼졌다.
“어차피, 어차피 나로서는 아무런 힘도 안 된다고 말하고 싶은 거잖아!”
치들은 발작하듯 소리를 질렀다. 패리스톤에게 말하는 어투였지만, 문장의 상대는 패리스톤만을 향한 것은 아니었다.
“나도 알고 있다고. 나도, 더 열심히 해야한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나로선 네테로 전 회장을 대신할 수 없단 말이야. 나는, 나는... ”
치들의 입에서 나오는 문장은 조금씩, 무너지는 그녀의 마음을 대변하듯 울음에 삼켜지며 흘러내렸다. 울음을 들려주고 싶지 않은 그녀의 자존심은 여전히 높아서, 그녀는 흐느끼는 소리를 내지 않기 위해 입을 다물었다. 눈물을 보여주고 싶지 않아 안경을 벗고는 한손으로 연신 눈물을 훔쳐냈다. 훔쳐내도 뚝뚝 떨어지는 눈물은 너무나 굵어서, 마치 디즈니영화를 보는 것 같았다.
“... 나도 잘 하고 싶단 말이야...”
잘 들리지 않는 발음으로 흘러나온 그녀의 목소리를, 패리스톤은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그의 표정은 놀라움과, 당황스러움과, 약간의 재미가 섞여 오히려 아무런 감정도 내보내지 않고 있었다. 마치 얼어버린 듯 가만히 그녀의 울음을 지켜보던 그는, 조심스레 팔을 뻗어 그녀의 어깨를 짚었다. 작게 힘을 주어 끌어당기자, 아이러니하게도 그녀는 자신의 가슴에 얼굴을 기대왔다.
패리스톤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잘 하고 있어요. 치들씨는.”
그는 자상한 손길로 치들의 뒷머리에 손을 얹었다.
“저는, 제가 인정한 사람 말고는 장난을 치지 않는다는 거, 아시잖아요?”
속삭이며, 작게 도닥였다.
“당신은, 더 강해지지 않으면 곤란해요.”
“저도, 이곳도.”
“.......”
“이건 진심이에요.”
작은 침묵 끝에 나직하게 말한 패리스톤의 문장은, 진심인지 아닌지 아무도 모르는 것이었지만.
치들의 울음이 그칠 때까지 그는 가만히 그녀를 감싸 안으며, 패리스톤은 한쪽 손으로 리모콘을 들어 창문의 커튼을 내렸다. 우는 그녀의 모습을 아무도 보지 못하도록. 필사적으로 지켜온 그녀의 위엄이 깨지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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