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아라] 음악AU
* 음악하는 신아라
* 나중에 연재를 하거나 갠지를 내거나 할 예정이지만 일단의 의불
신카이 하야토의 연주는 확실하고 호쾌하다. 한음 한음이 확실하게 퍼지며 공간을 메꾸고 듣는 사람의 귀를 함락시킨다. 아, 저것이 신카이 하야토의 연주구나, 하고 듣는 순간 확실하게 뇌에 각인되어 납득해버린다. 아무도 그의 연주를 다른 것과 비교하지 못한다. 그만의 세계에서만 존재하는 세상에서 하나 뿐인 연주이기 때문이다. 그의 연주를 처음 들었던 순간, 나는 저런 게 바로 재능이라는 것을 알았다. 지금까지 내가 재능이랍시고 휘둘러왔던 활은 전혀 재능 같은 게 아니었다. 그 재능은 시간이 지날수록 진화했고 이 순간까지도 그를 눈부시게 빛내고 있다. 아름답기 그지없는 선율을 듣는 데에도 나는 자기반성과 충격으로 미간을 찌푸렸다. 마음은 점점 가라앉았지만 소름이 몸을 타고 멋대로 올라왔다. 음악이 절정에 이르자 나는 생각하는 것조차 잊고 무대 위에서 피아노를 두들기는 그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나는 제일 먼저 자리에서 박차고 일어나 기립박수를 쳤다. 멋대로 일어나는 내 다리를 제어할 수 없었다. 무대 위에 퍼지는 스포트라이트. 그 정 중앙에 존재하고 있는 그는 점잖은 표정으로 일어나 관중들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그 빛 한조각도 닿지 않는 구석자리에 있었던 나는 그와 내가 너무나 멀게 느껴졌다. 같은 나이이지만, 다른 세계의 사람. 그런 생각으로 나는 아무런 미련 없이 바닥에 내려놓은 바이올린케이스를 집어 들었다. 사람들이 몰려 북적이는 복도를 그리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에 한발 먼저 문을 열고 나갔다. 문을 닫기 전에 기억에라도 다시금 남기려고 뒤를 돌아보았지만, 이미 연주자는 무대에서 사라져있었다. 그를 축하해주기 위해 무대 앞까지 나온 여성 팬들의 꽃다발은 갈 곳을 잃어 허공을 방황했다. 실력은 좋지만 팬에 대한 예의는 없네. 없는 결점을 억지로 찾아낸 나는 더욱 자신이 작아지는 것 같은 기분에 쓰게 웃었다.
회장의 복도는 여느 때와 같은 부유층 특유의 분위기로 가득 차 있었다. 턱시도와 드레스를 입은 사람들, 교양으로 중무장한 말을 나긋나긋하게 자아내는 사람들. 나는 그런 사람들의 공기가 조금 역겨웠다. 빠른 걸음으로 느긋한 걸음을 걷는 사람들 사이를 빠져나가 정문을 향해 걷는데, 뒤가 유난히 소란스러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모르는 목소리의 남자가 ‘신카이 하야토’라는 이름을 소리쳐 불렀고, 그와 동시에 나의 왼팔이 억센 손아귀의 힘에 잡혀 틀렸다. 깜짝 놀라 눈을 동그랗게 뜨자, 붉은 머리를 한, 아까 전에 들린 이름의 주인공이 나의 앞에 있었다. 턱시도차림의 약간 상기된 얼굴을 하고, 무대가 끝나자마자 나를 쫒아왔는지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무대의 주인공에 이끌려 많은 사람들이 나와 신카이의 주위를 둘러쌌다. 당황스러워서 팔을 뿌리치고 이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었지만 나를 온 마음으로 노려보는 그의 눈빛에 기가 눌려버렸다. 기분이 나빠지는 노려봄은 아니었다. 너무나 올곧은, 열정만을 담은 순도 100퍼센트의 눈빛이었다. 방금 전까지도 다른 세계의 사람이라 생각했던 사람이 눈앞에 있다. 실제로도, 그는 나를 모를 것이다. 평소 같았으면 먼저 뭐라도 말했겠지만 잡힌 팔이 생각보다 너무 아파서 나는 입을 열기 전에 미간을 찌푸렸다. 신카이는 나의 표정을 보더니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는 듯 나를 놓아주었다. 숨을 잠시 고른 그는 단숨에 나에게 말했다.
“나랑 같이 하자.”
“엉?”
내가 방금 무슨 소리를 들은 거지. 고막과 뇌가 잠시 연결을 끊어버린 느낌에 되물었다.
“아라키타 야스토모 맞지? H대. 바이올린 전공하는.”
“어어......”
확실하면서 뇌 속으로 성큼 다가오는 그의 음악과는 닮았지만 어딘가 다른 그는 터무니없는 말로 나를 단숨에 몰아세웠다. 제대로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나와 주위사람들의 표정은 똑같이 반쯤 넋이 나간 표정으로 그의 음성을 들었다.
“네가 봐주러 오길 기다렸어. 아니, 너를 만나고 싶었어.”
“하아?”
“네가 좋아.”
“........”
말문이 막힌 내 대신에 이번에는 주위의 사람들이 놀라움과 황당함을 담은 ‘하아?’를 내뱉었다. 한 명 한 명의 음성이 모여 홀을 울리자 그제야 신카이는 주위를 돌아보았다. 그는 아차, 하는 느낌으로 웃었다.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나를 향해 미안하다고 짧게 말하는 그의 눈빛은 즐거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
“내일 학교로 갈게. 제1연습실에서 만나자. 거기서 천천히 이야기 하자.”
“뭐?”
“편할 때 와. 올 때까지 기다릴게.”
나의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그는 다시 인파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무대 위의 젠틀한 미소보다 한결 후련한 표정으로 팬들에게 인사를 하며 대기실로 향하는 그에게는 많은 질문이 쏟아졌지만 그는 말을 아꼈다. 사람들은 이날의 주인공을 따라 마치 먹이를 쫓는 금붕어 떼처럼 우르르 나에게서 멀어졌다. 어느덧 나는 혼자가 되었다. 멍한 머리가 제대로 된 생각을 할 때까지 나는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서 방금 들은 신카이의 음성을 곱씹었다. 대사 하나하나가 뇌리를 맴돌았지만 전혀 이해되지 않았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가 내일 학교에 나를 보러 온다는 것이었다. 나는 근처 의자에 앉아 옆자리에 바이올린을 내려놓고 두 손으로 이마를 감싸 안았다.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뭐야 대체.......”
내일 학교에 가야 되는 거냐고. 정말이지.
“난 음악 그만뒀단 말이야.”
작은 웅얼거림이 적막한 홀에 퍼지다 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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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전 고대유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