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소슈카 003 - 첫만남下
* 히소카x슈카 우정드림입니다.
* 이르미x슈카 연애드림과 스토리가 이어지므로 이르슈우 스토리를 알고있으면 이해가 편합니다.
* 엑소시스트인 드림주와 싸우기 위해 접근한 히소카와의 이야기입니다.
* 이전편과 이어집니다.
* 이르미 연애드림도 섞여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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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아니야!”
자신의 말에 자신이 반응한 이르미가 살기를 뿜어내기도 전에 그의 말을 막은 슈카의 고함에는 얼마나 다급했는지 목소리가 갈라져 이상한 삑 소리가 섞여있었다. 목소리가 엇나간 것이 부끄러운데다 스멀스멀 자신의 허리를 쓰다듬는 히소카의 커다란 손이 그제야 느껴진 것에 대한 불쾌감에 슈카의 얼굴이 훅 붉어졌다. 이르미는 자신도 모르게 발산하려는 살기를 눈치 채고 습관적으로 다시 숨겼다. 순식간에 음산해지려는 분위기는 언제 그랬냐는 듯 돌아와 있었다.
“무슨 개소리를 하는 거야! 이런 변태는 한 트럭으로 와도 내가 싫다고!”
“그건 좀 상처인 걸♦”
눈치 없이 끼어드는 히소카의 혼잣말에 슈카는 부츠의 굽으로 그의 발을 사정없이 밟았다.
“닥쳐라.”
“무서워라♣”
핀 힐이 아니기 때문에 그렇게까지 아프지는 않았겠지만, 그래도 딱딱한 굽이기에 고통은 있었다. 히소카는 새끼발까락이 얼얼한 것을 미소로 참으며 입을 다물었다. 여기서 더 입을 열면 정강이를 차일 수도 있다는 유치한 상상을 하며. 그는 이 상황을 즐겼다.
“이 녀석은 오늘 처음 만났단 말이야! 처음만나서 갑자기 싸우자고 지랄하는데 뭐 어쩌라고! 어차피 히소카가 왔다는 건 이미 알고 있을 거 아니야! 다 봤으면서!”
“응. 다 보긴 했지.”
예상과는 다르게 이르미는 손쉽게 물러나는 듯 했다. 하지만 이르미의 살기는 그가 시선을 그녀의 허리로 옮김과 함께 다시금 새어나오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소리는 안 들렸거든.”
“뭐어?”
“둘, 언제 그렇게 친해져서, 통성명까지 한 거야?”
“처음 만나는 사람하고는 이름도 물어보면 안 되는 거냐고!”
“나를 만났을 때는 안했잖아?”
“그건 그때고!”
아, 뭔가, 시작됐다. 슈카는 직감적으로 느꼈다. 이 상황은, 이른바, 여느 로맨스 드라마에서나 나올법한 상황이었다. 질투하는 히로인이 자신의 질투의 감정에서 나오는 분노를 합리화시키기 위해 연인에게 상황의 작은 요소 하나하나를 트집 잡아 자신과의 상황과 대조하는 것과 똑 닮아있었다. ‘언제부터 네가 그렇게 세심하고 감성적인 성격이었던 거야.’ 슈카는 속으로 호소했다. 하지만 넓은 것 같다가도 좁고, 깊은 것 같다가도 얕은 것이 인간의 마음이리라. 그녀는 일단 이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었기에 이르미의 성격 고찰은 일단 옆으로 밀어두었다.
“슈카가 히소카에게 한방 먹인 게 신기해서, 칭찬해주려고 왔는데 그렇게 친해질 줄이야... 상상도 못했어.”
“그러는 너는 내가 고생하고 있는 거 다 보고 있었으면서 안 구하러 왔다는 거잖아! 처음부터 이르미가 나왔다면 다 좋게 끝났을 텐데!”
“그래서 내 탓이라는 거야? 그건 너무한 걸. 그래도 슈카가 위험하면 바로 구해주려고 했다고? 내 충고처럼 슈카는 상대가 되지 않는 히소카에게서 필사적으로 도망쳤잖아? 제대로 저택까지 도망쳐줬으면 내가 나오려고 했는걸.”
“결국은 안 나왔잖아.”
“네가 히소카를 그런 식으로 던져버리리라곤 상상하지 못했으니까. 역시 슈카야.”
“시비 걸면서 칭찬하지 말라고! 헷갈리잖아!”
이르미의 목소리는 그의 마음의 상처를 표현하며 그 특유의 나긋나긋하고 품위 있는 어조를 하고 있었지만, 살기와 스산함과 불쾌한 진흙과도 같은 무언가가 안에 꿀렁거리고 있었다. 히소카는 그런 이르미의 문장에 전혀 굴복하지 않고 정면으로 대응하는 슈카가 흥미로운 것을 넘어 신기해보여 구경하듯 둘의 말싸움을 바라보았다. 이르미의 살기정도는 그녀에겐 일상이라는 것을 히소카는 쉽게 알 수 있었다. 일평생 그의 살기를 접해온 키르아마저 이르미를 거부하지 못한 것을 기억하면서, 히소카는 그녀의 대범한 성격이 조금은 마음에 들었다.
“그것보다, 설명을 해주었으면 좋겠는데. 히소카?”
“...... 음♦”
슬슬 이르미가 자신에게 추궁할 것이라 예측하던 히소카는 말을 고르는 척 하며 머릿속으로 생각을 빠르게 전개했다. 여기서 ‘그녀를 유혹하는 중이었다.’라고 하며 이르미를 적으로 돌리는 것이 좋은지, 아니면 다른 변명을 대며 슈카와의 관계를 적당한 선 안으로 유지한 후, 그녀의 악마와 싸우는 것이 좋은지. 즐거움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히소카의 입 꼬리가 씰룩였고 흥분한 그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잠시 생각한 그는 그녀를 끌어안았던 팔을 푸른 후 그녀의 몸을 휘릭 돌려 그녀의 양어깨를 뒤에서 잡았다. 마치 이르미의 살기를 그녀의 등 뒤에 숨어 피해보려는 것처럼 몸을 살짝 웅크린 그는 애교 섞인 말투로 대답했다.
“친구♥”
“에.”
“뭐?”
“그렇지? 슈-카♥”
그의 반응에 이르미와 슈카는 동시에 얼빠진 표정을 지었다. 이르미는 자세한 설명을 원한다는 표정으로 슈카를 바라보았다. 자신은 그렇다 쳐도, 이야기의 당사자인 슈카마저 처음 듣는 표정을 지은 것이 신경 쓰였기 때문이었다. 슈카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는 히소카를 노려보았다가,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푹 내쉬었다. 지금 그녀와 히소카에게 제일 중요한 것은 ‘이르미의 분노에서 벗어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슈카는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이르미를 바라보았다.
“아무래도 내가 마음에 든 것 같아. 얘가 친구라 한다면 친구겠지.”
“.......그런 거야?”
슈카의 대답에, 이르미는 평온한 어투로 되물었고, 슈카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 뭐, 친구라고 해도 아는 사이지만. 그것보다, 얘 네 친구라면서? 친구의 친구는 친구니까.”
“히소카는 내 친구가 아닌걸. 그리고 슈우, 나는 네 친구가 아니라고 몇 번을 이야기해야 알겠어?”
“잠깐 이르미, 그건 무슨 소리야?♦ 상처받을 것 같아~♣”
“아무리 친구라 하더라도 연인의 친구란 믿어도 배신하는, 삼각관계에서 가장 위험한...”
“아악 복잡해! 아무튼 그렇게 정리하고 넘어가자고! 피곤해 죽겠으니까 얼른 너도 떨어져!”
질금질금 길어지는 심문과 대화에 더 이상은 못 참겠다는 듯, 슈카는 이르미의 말을 끊으며 소리질렀다. 두 팔을 붕붕 휘두르며 히소카를 쫓아내자, 그는 생각보다 간단히 그녀의 등에서 떨어져 아무것도 안했다는 듯 두 팔을 펼쳐보였다. 싱긋 웃는 그의 미소는 무언가 꿍꿍이가 담겨있는 것 같았기에 슈카는 그를 노려보다 등을 돌렸다. 납득하지 않은 이르미를 억지로 밀며 돌아가는 그녀에게, 히소카는 자리에 우뚝 서서 가만히 배웅했다.
“다음에 또 놀러올게♦”
히소카는 그녀의 등에 말을 걸었다. 슈카는 들었지만, 대답하지 않았다.
* * *
이르미를 질질 끌고 저택으로 돌아온 슈카는 자신의 방문을 열자마자 인간의 언어라고는 생각되지 않을 괴상한 소리를 흘리며 침대로 직행했다. 온몸의 나사가 빠진 것처럼 힘이 빠져버린 몸을 푹신한 매트리스에 푹 담그자 그제야 살겠다는 듯 그녀는 숨을 푹 내쉬었다. 이르미는 그런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그녀의 곁에 앉아 히소카가 매만졌던 그녀의 허리를 바라보았다. 그의 시선은 마치 도려내야하는 암 덩어리를 보는 것 같았다. 명치 아래에서 토해내야 할 것만 같은 진흙이 꿀렁이는 게 느껴졌다. 그는 손을 들었다가, 그녀의 등위에 얹었다가, 밑으로 가만히 쓰다듬었다. 그는 이 감정의 의미를 정의내릴 수 없었다. 하지만, 히소카와 함께 있던 그녀를 떠올리기만 해도 속이 뒤틀리는 걸 보아, 그리 좋지 않다는 것만은 확신할 수 없었다.
“히소카를 죽일까.”
거품처럼 포록 나와 버린 이르미의 말에 감겨있던 슈카의 눈이 떠졌다. 그녀는 고개를 돌려 이르미 쪽을 바라보았지만, 엎드려있어서 그의 표정은 보이지 않았다. 애써 확인해서 좋을 건 없다는 것을 그녀는 알고 있었기에, 도로 눈을 감았다.
“그러지 마. 정말 그 이상은 아니니까.”
그녀조차 의미를 알 수 없는 말을, 그녀는 웅얼거렸다.
“뭐, 네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신기하게도 대화는 이어졌다. 눈가리고 아웅하듯 상황을 납득한 이르미는, 그렇게 한동안 기다란 그녀의 머리칼을 가지고 놀았다. 집요하게 그녀의 허리를 주무르는 그의 손이 간지러워, 그녀는 쉬고 싶다고 말을 하며 이불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는 불룩 튀어나온 이불을 바라보다가, 가만히 자리를 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