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헌터x헌터

[이르미] 시험관

2017. 10. 19. 14:34

* 이전에 풀었던 '이르미와 히소카가 헌터시험의 시험관이면 어떨까?' 하는 썰을 연성해보았습니다. 

* 엘바님(@elba22_celadon)의 소원으로 연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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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르미 조르딕에게 헌터 협회에서 안내문이 온 것은 그가 헌터가 된지 몇 년이 지난 후의 일이었다. 헌터 협회 안에서도 요주의 인물이라고 찍힌 자신을 어째서 호출하는 건지 의문이었지만, 이르미는 담담하게 협회에서 온 우편물을 뜯어보았다.


“…….”

그가 이번 헌터 시험의 시험관임을 알리는 안내문이었다. 가면 갈수록 영문을 모르는 지시사항의 이르미의 고개가 옆으로 돌아갔다. 이번 헌터 시험의 시험관은 뽑기로 정해졌다는 설명은, 머리로는 이해가 가지만 마음으로는 썩 내키지 않는 일이었다.


돈을 주는 일도 아니고 말이지-. 귀찮은걸.”


나가지 않아도 특별한 불이익은 없는 것 같으니 가지 말자. 이르미는 가볍게 결정하며 안내문을 팔락 넘겨보았다. 건성으로 안내문을 훑어보던 이르미의 눈이 움찔하고 떨렸다. 시험관을 사퇴하는 헌터들이 너무 많기 때문에, 이번 호출에 응하지 않는다면 헌터 자격을 박탈한다는 조항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헌터 협회도 생각을 안 하는 사람이 있나 보네.”


이르미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외출준비를 했다.


 


수많은 바늘로 얼굴을 바꾼 이르미, 기타라클의 기괴한 모습을 본 수험생들은 그 이상한 압박감에 식은땀을 흘렸다. 그들이 있는 곳은 아무도 없는 작은 무인도. 그 시작과 끝이 정해져 있는 자연으로 가득 찬 땅덩어리에서, 기타라클은 배에서 내린 수험생들을 맞이했다.


그래서, 이번에는 어떤 시험이요? 시험관씨.”


별다른 인사를 하기도 전에 그의 말을 끼어드는 짜증에 가득 찬 목소리가 들렸다. 멍청하면 용감하다고 하던가. 그리 기분이 좋지 않은 기타라클의 심기를 건드리는 것은 척 봐도 허세와 과시로 몸을 잔뜩 치장한 사람이었다. 이르미는 그의 도발에도 화를 내지 않고, 찬찬히 그들을 살펴보았다. 1차와 2차시험에서는 사람을 볼 수 있는 사람이 없었던 걸까, 혹은 시험관이 없었던 걸까.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3차까지 올라와있었다. 그들 하나하나를 살피고 합격의 여부를 결정지을 생각은, 이르미에겐 애초에 없었다. 단순히 이 시험을 빨리 끝냈으면 좋겠다. 그는 다음 임무의 계획을 생각하며 간단히 말했다.


합격은 한 사람.”

나를 찾아낸 사람.”

누군가 나를 찾아내면 시험은 끝나.”

그럼, 힘내.”


턱을 달각거리며 한마디 뱉은 기타라클은 말이 끝나자마자 자리에서 사라졌다.

예견 없이 시작된 시험에 모든 수험생들은 당황했다. 앞에 있는 시험관 헌터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한 정보도 없이, 그들은 우왕좌왕 흩어지기 시작했다. 합격자가 한 사람이라는 기타라클의 말은 그들에게 커다란 영향력을 일으켰다.

어떤 이는 이 사람들을 모두 해치운 마지막 사람이 합격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생각을 하였고, 어떤 이는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사람에게 시험관이 스스로 모습을 드러낼 지도 모른다는 판단을 하기도 했다

이 해의 3차시험은, 시험관의 의도가 어땠는지 간에, 수험자끼리의 데스 매치가 되어버렸다. 사람들은 다른 이를 죽이거나, 죽이지 않더라도 최소한 움직일 수 없게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싸울 능력이 부족한 이들은 난동을 부리는 사람들에게서 피해 몸을 숨겼으며, 얼마 시간이 지나지 않아 시험의 시작점에는 기절한 사람들과 시체로 넘쳐나기 시작했다.


점수를 매길 가치도 없는 것들만 모였네.’


시작점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건장한 성인 남성의 체력이라면 뛰어서 2시간정도밖에 걸리지 않는 곳에서, 이르미는 땅에 몸을 묻은 채 고개만을 내밀고 벌어지는 참상을 구경하듯 지켜보았다. 얼굴에 이리저리 박혀있는 바늘은 이미 빼낸 지 오래였다.

어차피 아무도 자신을 찾아낼 수 없으리라. 이르미는 제츠를 사용하며 땅 속으로 완벽히 몸을 숨겼다. 평소보다 조금 널찍하게 파놓은 땅 안에서, 그는 휴대전화를 사용해 4차 시험의 시험관에게 인수인계를 진행했다.


, 히소카? 나 이르미. 최후의 한 사람이 남으면 4차시험을 진행해도 좋아. 그 사람이 3차시험의 합격자니까.”

괜찮겠어? 누군지 확인도 하지 않고 넘겨버리면

괜찮아. 어차피 네가 죽일 거잖아?”

“…


이르미는 전화를 끊고, 평화롭게 한 숨 자기 위해 눈을 붙였다.


 

헌터 협회의 불찰로 인해 이르미 조르딕과 히소카 모로를 시험관으로 배치한 그 해의 헌터 시험은, 합격자 0명과 유례가 없을 정도로 많은 사상자수를 내며 막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