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르슈우 018 - 어려운 문제
* 헌터헌터 이르미 연인드림
* 이르미x슈카
* 청의 엑소시스트 AU가 있습니다
* 암흑대륙 스포가 조금 있습니다.
* 저자의 독자적인 세계관 해석이 섞여있습니다.
* 임무 에피소드. 이르미와 슈카가 만난지 9달이지났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 사귀고 있지 않을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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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화냐.”
슈카는 망연자실하게 인터넷의 화면을 확인해보았다. 헌터협회의 사이트에는 사정으로 인해 시험일정을 당긴다는 안내메시지가 이미 몇 개월 전에 고지되어있었다. 본래 헌터시험은 매년 1월에 개시된다. 하지만 올해는 7월에 이미 헌터시험이 완료된 것이다. 영혼이 털린 듯 입을 떡 벌린 슈카의 옆에 늘어져라 앉아있던 미르키는 절망하는 그녀에게 한마디 했다.
“그러게 왜 헌터협회 사이트에 가서 확인 안하고 대충 인터넷에 떠도는 정보를 믿은 거야. 바보냐?”
“어... 그러게?”
“뭐, 그럼 어쩔 수 없지. 내년을 노려봐.”
“하....... 나 헌터 되어야 하는데.......”
친한 친구의 집에 온 듯 바닥에 주저앉아버린 슈카를 내려다보며 미르키는 마치 꼰대 아저씨라도 된 것처럼 잔소리를 해댔다.
“그래서야 임무 제대로 완수해서 돌아갈 수나 있겠냐? 자기 임무도 제대로 못 챙겨서 어떻게 하려고 그래.”
“어쩌라고. 내년시험 있으면 내년에 보면 되거든? 어차피 언제 돌아갈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그쪽에선 이미 나 까먹고 있을 가능성이 다분한걸. 게다가 너도 네 임무 다 우리 쪽으로 넘기고 있잖아!”
에라 모르겠다. 바닥에 늘어져라 주저앉은 슈카는 미르키에게 삿대질을 하며 쏘아붙였다. 틀린 것 하나 없는 그녀의 말에 반박할 말을 찾지 못한 미르키는 분한 표정으로 그저 그녀를 노려보기만 했다. 그 기세로 기운 좋게 미르키를 찍어 누르나 했더니, 이내 기운이 쭉 빠져버린 그녀는 자리를 털고 일어나 자신의 방으로 터덜터덜 돌아갔다.
헌터는 아니지만, 사실 중요한 넨은 사용할 수 있었다. 조르딕가에 있으니 악마를 퇴치해달라는 임무도 정기적으로 들어왔다. 구마하고 사람을 구하는 일은 이전의 세계에 있었던 것만큼, 어떻게 생각하면 더 많이 하고 있었다. 실제로 슈카가 하고 있는 일은 웬만한 헌터보다 나았다. 하지만 그녀가 원하는 것은 ‘헌터’라는 호칭에서 나오는 사회적 권위였다. 악마를 접했을 때의 대처방법, 악마에 대한 지식에 대한 전파, 일반인을 구할 수 있는 후임 엑소시스트들의 교육. 규모가 커다란 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헌터’의 자격을 가지고 있는 것이 편리했다.
조르딕의 이름을 빌려서 사용하는 방법도 있긴 있었지만, 그것은 슈카의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자신의 일은 자신의 일이다. 아무리 조르딕에서 일을 하고는 있지만, 그녀는 ‘조르딕’이 아니었다. 도움을 주는 건 감사한 일이고, 그것도 자신은 기꺼이 이용하겠지만, 조르딕과 동화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방에 도착한 슈카는 문을 열자마자 ‘아’ 하고 신음했다. 짜증이 담긴 음성은 방에 하나밖에 없는 의자를 당당히 점령하고 있는 이르미에게 향했다.
"이 방은 원래 이르미의 제2의 방이었니?"
"아니 그냥 빈방이었어."
“내가 허락 없이 들어오지 말라고 했지? 이전엔 나 옷갈아입을때 들어오더니 이번엔 사람 없을 때 들어와서 뭘 하는 거야 대체.”
“어디 갔다 왔어?”
가뜩이나 기분이 좋지 않은 슈카의 비아냥에 이르미는 일상적이라는 듯 흘려넘기며 편안한 자세로 다리를 꼬았다. 그의 태도가 익숙한 슈카는 평범하게 들어와 망토와 와이셔츠를-그 안의 속옷까지- 벗어던지고는 그가 보든 말든 편한 셔츠를 서랍에서 꺼내 입었다.
“미르키네.”
“왜?”
“헌터시험 확인하려고. 몰랐는데 7월에 있었더라, 헌터시험?”
“응. 알고 있었어.”
기지개를 피며 방 침대에 늘어져라 눕던 슈카는 이르미의 대답에 용수철처럼 튀어 올랐다.
“알고 있었다고?!”
“응. 암흑대륙으로 진출할 탐험인원을 뽑기 위해서일거야. 이곳은 조용하지만 지금 헌터 협회 쪽은 꽤나 어지러운 것 같던걸.”
‘그걸 왜 나한테 말 안 해줬어!’ 그녀는 당장이라도 소리칠 것 같은 얼굴로 이르미를 바라보았다. 그녀가 묻고 싶은 것을 진작 눈치 챘음이 분명한 이르미는, 그 특유의 표정 없는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다 고개를 홱 돌려버렸다.
“안 물어봤잖아?”
“아아 진짜 너 아-.”
슈카는 맥없이 침대 위에 엎어져서 손에 잡히는 베개가 마치 이르미라도 되는 듯 분한 주먹으로 그것을 팡팡 쳤다.
“너 진짜 싫다. 어떻게 내가 무슨 임무로 여기 왔는지 어느 누구보다 잘 알면서 그걸 말 안해 주냐? 질린다, 너 정말.”
되는대로 악담을 퍼부으며 널찍한 침대 위를 데굴데굴 굴렀다.
“정말 네가 말만 해줬으면 암흑대륙 탐험 쪽에 참여해가지고 악마대처방법이나 정보나 이것저것 협회에 퍼뜨릴 수 있었는데! 그러면 내 임무도 반은 달성된 거나 다름없단 말이야, 너 때문에 얼마나 더 여기 있어야 할지 감이 안 잡히잖아-! 상황은 꼬일 만큼 꼬였고! 난 이제 뭘 어떻게 해야할지 막막하고! 으으 암흑대륙에서 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희생될지 생각하면 위가 쓰리다고!”
신고 있는 워커부츠 때문에 완벽하게 침대 위로 올라가지 못하고, 비죽 튀어나온 짧은 두 다리가 분하다는 듯 발장구를 쳤다.
“아....... 집 가고 싶다... 친구들이랑 노래방 가고 싶어, 맛집 투어도 하고 싶어, 밤새서 술도 마시고 싶고 게임방도 가고 싶고 피방도 가고 싶어.......”
기운이 모두 빠져서, 물먹은 수건처럼 축 늘어진 채 웅얼거렸다.
이르미는 의자에 가만히 앉은 채, 눈앞에서 벌어지는 슈카의 원맨쇼를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고 지켜보다가, 그녀의 마지막 말에 무언가 깨달은 듯 눈썹을 올렸다.
“‘돌아가고 싶어’?”
그는 국어책을 읽듯 그녀가 한 말을 따라 말했다.
“집나가서 지금 개고생하고 있는 거 안보이냐? 집 나가면 개고생이다- 퇴근 휴직 퇴직 원한다. 슈카는 원한다!”
“..... 그렇구나, 너 돌아가야 하는 구나. 임무 끝나면.”
새삼, 그것을 깨달은 듯 손을 턱에 짚으며 이르미는 혼잣말했다. 갑자기 잠잠해지는 이르미의 기운에 계속 악다구니를 쓰던 슈카는 입을 다물었다. 그녀는 어지러워진 침대 위에서 주섬주섬 일어나 이르미를 바라보며 걸터앉았다.
“왜 그래?”
요즘 계속 같은 시간을 공유해서일까, 슈카는 다른 사람보다 이르미의 이상을 알아채는 것이 이상하게도 빨랐다. 무언가 생각에 빠진 이르미를 가만히 들여다보다, 슈카는-본인도 아니라고 생각하면서도-문득 떠오른 생각을 입에 올렸다.
“내가 원래 있던 세계로 돌아가는 거, 싫어?”
“.......”
슈카의 말에 이르미는 스위치가 들어간 듯, 생각지도 못한 것에 깨달은 듯, 조용히 눈을 크게 떴다. 생각하느라 숙이고 있던 그의 고개가 천천히 올라갔다. 심연과도 같은 어두운 눈 안에 그녀를 담았다. 그는 그렇게, 그녀를 빨아들일 듯 바라보다 이해할 수 없는 말을 했다.
“- 조르딕을 위해, 일까나.”
“-?”
“아니면, 불편해지는 게 싫어서?”
“응?”
“그렇지만 내가 그럴 린 없는데. 가족도 아니고, 약혼녀도 아니고.”
“저기요 이르미씨? 뭘 그렇게 중얼거려?”
“친구... ...?”
“야!”
“응, 어렵네.”
슈카가 아무리 말을 걸어도 그것을 무시한 이르미는 계속 이어지는 의문에 ‘어렵다’라는 깔끔한 결론을 내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쓸데없는 동작을 최소화한 그의 움직임은 슈카가 그를 붙잡을 여유조차 주지 않을 만큼 깔끔했고 아름다웠다.
“뭔 소리야? 아까부터.”
이미 이르미라는 사람에게 익숙해진데다가, 자신의 말이 계속 무시당한 것에 대해 짜증을 내고 있는 슈카에겐 보이지 않았지만 말이다.
“잠시 기다려. 물어보고 올게.”
“어, 엉? 뭘!”
이르미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슈카를 그대로 두고는, 이르미는 훌쩍 나가버렸다.
슈카는 갑자기 휑해진 방을 허망하게 바라보다 다 귀찮아진 표정을 하며 침대 위에 발라당 드러누웠다. 꼼지락거리며 신발과 양말을 하나하나 벗어 던지고는, 이불안으로 기어들어가 꾸물꾸물 바지를 벗어던지고선, 몸에 이불을 칭칭 감고, 푹, 한숨을 내쉬었다.